[콜롬비아] 스페인어 어학연수, 홈스테이, 축제, 대중교통, 초대, 많은 메데진의 추억들..


콜롬비아에 갔던 목적은 스페인어 어학연수였습니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알고지내던 콜롬비아 메데진 출신의 캐롤이라는 친구가 적극 추천한 덕에 이 도시를 어학연수의 목적지로 정했었죠. 물론, 제가 갔을 당시만해도 한국사람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곳에서 2달이 좀 넘는 시간동안 스페인어 공부를 했습니다. 주로 말하고 듣기에 촛점을 맞췄던 수업이었죠. EAFIT이라는 사설대학교였는데, 이 지역에서도 꽤 돈 있는 사람들만 다니는 대학이었습니다. 대학교 부설 어학원비용과 홈스테이 비용을 다 포함해도 월 50만원도 안되서 참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했구요.

왼쪽부터 브라질, 호주, 덴마크,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들이고, 마지막은 접니다. 저 친구들중에 아직도 연락하는 사람은 영국에서 왔던 샘밖에 없네요. 지금은 콜롬비아 남자와 결혼해서 콜롬비아에서 잘 살고 있는 그녀입니다.

다시 그 수업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가 홈스테이를 했던 집입니다. 첫번째 사진이 제가 지냈던 방이었구요. 아침, 저녁도 주고, 주말마다 같이 다른곳도 가주던 엘낀과 함꼐 살았었습니다. 뭐, 아침 저녁이야 가정부가 와서 매일 해놓고 가는 음식들을 데워서 먹는 것이었지만요. 적어도 피자를 시켜서 먹는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호스트였던 엘낀때문에 좋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엘낀이 가족 만찬이 있으니 함께 가지않겠냐고 해서 갔었습니다. 초대를 받아서 가긴 한건데, 다들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고마웠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저 당시에는 나름 공부를 했다고는 핮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과 머리속에서 맴도는 말의 수준이 완전히 달랐을 때였는데 말이죠.

특히, 저날 먹었던 음식들.. 정말 맛있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더 못먹여서 안달인게 조금 힘들긴 했었지만요. 그 이후로도 학교에서 컨버세이션 파트너를 하거나, 우연하게 친해진 친구들 집에도 자주 초대받아서 놀러갔었습니다.

그렇게 놀러다녔던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전역에 퍼져있는 슈퍼마켓. 엑시또(EXITO)입니다. 성공이라는 의미인데, 처음 콜롬비아에 도착했을 때, 하필 고속도로 출구에 이 가게가 있어서 EXITO가 고속도로 출구를 의미하는 줄 알았습니다.;;; 덕분에 한동안 놀림받았었습니다. 하하;


몬터레이는 한국의 테크노마트쯤 되는(규모는 훨씬 작지만) 전자제품을 파는 곳입니다. 사실, 이곳에 왔던 이유는 스페인어 전자사전을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정말 허접한 성능을 가진 프랭클린의 전자사전이 아니라, 카시오나 샤프에서 나온 전자사전을 구하기 위해서 왔던 거였죠. 하지만, 이잡듯이 다 뒤져도 전자사전을 살수가 없었습니다. 들어가는 가게마다 모두 ‘딕씨나리오 엘렉뜨로니꼬(전자사전)!!’을 외쳤지만, 없거나 프랭클린의 제품만을 보여줬거든요.

근데, 한 매장에서 혹시 ‘엘 디아만떼’라는 곳으로 가면 있을거라고 귀뜸을 해 줍니다. 별로 멀지 않으니 택시를 타고 가보라고 하네요. 그래서 택시를 잡아타고 갔습니다. 꽤 멀었습니다.-_-;;;;;

하지만, 카시오에서 나온 English-Spanish 전자사전을 구할 수 있었으니, 차비는 아깝지 않더라구요. 나중에 스페인어를 배우는 다른 친구가 제 전자사전에 눈독을 들이고 어디서 사냐고 물어본 뒤에, 엘 디아만떼를 다 뒤졌지만 결국 못 구입했거든요. 제가 산게 마지막이었나 봅니다. 그 이후로도, 이런 전자사전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못봤습니다. ;;

저는 지금도 잘 애용하고 있구요.


이 사진은 영화보러 갔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DDR을 했었는데, 한때 동네를 휘업잡던 기억(-_-a)을 떠올리며 높은 난이도를 골랐었죠. 그렇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주위에 수십명이 몰립니다.-_-;;;; 어디서 굴러먹은 동양인 하나가 와서 이런걸 하는게 신기했나 봅니다.

결국 게임을 끝내고 나니, 주위에서 박수까지 나옵니다. 참 민망하데요.(-_- );;


제가 다닐 때 EAFIT 대학에서는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학교의 축제에 참여해서 맛나는 먹거리도 많이 먹어보고,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보고, 거기서 또 많은 콜롬비아 학생들과 친해지고.. 이렇게 사람을 사귀던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나고 보니, 남는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팍팍 드네요.


국기를 걸어놓은 어느 식당에서. 태극기 밑에 JAPON(하뽄-일본)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당장 들어가서 JAPON이 아니라 COREA DEL SUR다. 라고 알려주고 나왔는데, 그 뒤로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거길 다시 갈 일이 없었어서..


메데진에 체류하고 있을 때 이곳에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났었습니다. 은영이 누나하고 형태 형이었는데, 형태형은 그 이후에도 남미 여행을 하면서 2번이나 더 만날정도였답니다. 지금 다 연락은 하고 지내지만, 뜸해진건 사실이네요.

둘을 기다리다가 찍었던 사진이네요.


평지인 지역이 넓지 않다보니, 메데진의 집들은 모두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높은곳에 살수록 잘사는 홍콩과 같은 곳이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높은 곳에 사는 것이 가난한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메데진의 교통수단인 Metro Cable를 이용해서 그 지역을 다녀왔는데, 이래저래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그나저나 눈치채셨나요? 사진에 나온 건물의 반 이상은 그림이랍니다~



어쩌다보니 메데진에서는 택시를 여러번 이용했습니다. 운전자 확인부터 그런 것들을 잘 해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구요. 한번 말문이 터지면 끝없이 질문을 쏟아내던 아저씨들, 메데진의 뭐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면, “빠이사(안띠오끼아 사람)!”라고 대답해주면 엄청나게 좋아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나름 자기가 있는 곳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곳의 택시들은 최근 차량도 있지만,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없는 녀석들도 많지요. 일단, 택시가 오래되보이면 안 타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더 위험할 뿐더러, 잘 달리다가 멈춰버리는 사고를 당할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아직도 그 똥차로 100km을 밟으면서 드래프트를 하던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드래프트를 하면서 버튼을 꾹 누르니, 갑자기 요금이 확 올라가던..하하. 물론, 내릴때는 그거 다 계산해서 덜 주고 내렸었지요. ㅡ.ㅡa;;



가장 많이 이용했던 교통수단은 아무래도 메뜨로(METRO)였습니다. 제가 살던 아구아까딸라(Aguacatala)지역과 엘 뽀블라도(El Poblado), 그리고 메데진 시내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인데,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지요. 사실, 제가 좀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기도 했었구요 ㅎㅎ..

아, 3개월 정도밖에 안 살았던 메데진이 왜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 때문일까요. 호주의 멜번, 콜롬비아의 메데진 그리고 미국의 자그마한 마을 스탁빌까지. 그리워하는 장소들이 자꾸만 늘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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