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 #02 - 쿠바 아바나에서 서울 고속터미널행 한국 시내버스를 만나다


쿠바를 여행하기 전에 이미 쿠바를 다녀온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 가면 서울 시내버스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어요."라는 말. 하지만,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한국 시내버스를 바로 발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까삐똘리오로 옆에서 아주 익숙한 녹색 버스를 발견할거란 그 사실을.

그냥 사진으로만 보면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좀 특별해 보이는 지역에 4212번 시내버스가 잠시 정차해 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한국이라고 믿을만 하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번호판이 한국 번호판이 아닌 HWP929라고 쓰여있는 쿠바의 번호판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까삐똘리오 옆에 주차되어있는 버스는 방배동행 4212번 버스였다. 서울에 있을 때 몇번 이용해 봤던 버스이기도 해서 반갑기는 했는데, 도대체 이 버스가 녹색을 그대로 간직한 채 쿠바의 한복판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버스를 타면, 한국의 방배동까지 바로 갈 수 있을까?"

라는 망칙한 상상을 하면서 버스를 구경했다. 갓 수입된 것일까, 아니면 아직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했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안내문들도 그래도 붙어있었는데, 그 날짜가 2008년인 것을 보면 쿠바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녀석인 것 같았다. 쿠바 아바나의 한복판에서 발견하는 서울 시내버스의 느낌이란 굉장히 묘하다. 순간적으로, 내가 한국으로 되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이 버스는 그냥 정차해 있는 버스라서 어떻게 이곳에서 버스가 운행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쿠바에서 버스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런 의심없이 탔던 꼬히마르(Cojimar)행 58번 버스. 버스를 타기 전만해도 DAWEOO라고 쓰여있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쿠바에서 이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버스라는 사실밖에는 별다른 짐작을 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버스를 타고보니, 뭔가 굉장히 익숙했다. 분홍색의 좌석과 손잡이 모양. 깨져있는 벨의 모양. 그리고 손잡이와 에어컨의 모양까지. 너무 익숙한 느낌에 주위를 더 둘러봤다.


서있던 곳의 윗부분에는 '서울 교통카드의 새 이름 - 내이름은..."이라고 쓰여있는 한글이 보인다. 처음 탈때는 색이 완전히 달라서 짐작하지 못했었는데, 이 버스도 바로 서울에서 운행하던 버스였던 것. 버스에 있던 안내문의 날짜가 2007년 9월인걸로 봐서, 이 녀석도 쿠바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것 같았다. 다만, 2년동안 운행된 것 치고는 엄청나게 낡아버리긴 했지만.


쿠바의 시내버스는 금연. 쿠바를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을 위해서 한국말로 '금연'이라고 써주는 센스도 잊지 않는 쿠바 버스회사의 친절함에 눈물이 주룩 난다. ㅠㅠ...



엄벌을 한다는 문구는 그대로 남겨놓은걸 보면, 쿠바에서도 '버스 운전기사 폭행'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 듯 싶었다.(-_- ); . 물론, 쿠바 사람들이 한글을 이해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서도, 버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글의 흔적은 즐거움 그 이상이었다.


꼬히마르(Cojimar)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버스를 탔다. 이 버스의 창문에는 '으뜸 양천'이라는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사진을 보니 아까 타고왔던 그 버스였던 듯 싶다. 물론, 운전기사와 돈을 걷는 아저씨는 바뀌어 있었지만.

쿠바에서 만난 한국. 어쩌면 이런 것이 여행의 시작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돈 40센타보(약 100원)를 내고 타는 버스에서 만난 한국의 흔적.

새삼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문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했던 버스.

다시한번 이야기하고싶다.

"쿠바에는 서울 방배동행 시내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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