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직업 - 위험한 환경에서 유황을 캐는 사람들, 이젠화산(카와이젠-KAWAH IJEN)


인도네시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곳은 다름아닌 이젠 화산이었다. 하루에 방문하는 여행자의 숫자가 100명이 채 안되는, 그래서 여전히 그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TV에서 극한 직업으로 소개된적도 있었던 인도네시아의 이젠 화산(카와 이젠). 어쩌면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현장을 너무 쉽게 들여다보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말 잊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였다.



새벽 4시 반에 숙소에서 출발해 이젠화산의 초입에 도착한 것은 새벽 5시 반 경. 이제부터 이곳에서 왕복 6km 정도의 트래킹이 시작된다. 입장료는 25,000 루피아, 사진 촬영료 20,000 루피아. 1인당 총 45,000 루피아가 필요했다. 사진을 찍지 않을 거라면 사진 촬영료는 내지 않아도 된다. 이 곳을 통과하면 사진을 찍는지 검사하는 사람도 없기는 하지만, 이런 건 양심적으로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출발 장소의 해발은 1,850m인 반면에 3km를 지나 정상까지 가면 해발이 2,386m까지 높아진다. 3km만에 약 536m를 올라가는 강행군이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왕복 4시간을 주었는데, 실제 536m를 올라가는 것 외에도 정상에서 칼데라호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또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1시간, 그리고 칼데라호 왕복하는데 1시간, 내려오는데 1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와이프의 체력안배를 고려하고, 혼자 칼데라호를 다녀오느라 4시간을 꽉 채워서 이용하긴 했지만.




이젠화산 트래킹의 시작. 인도네시아가 적도에 있다고는 하지만, 해발이 높은데다가 아직 이른 새벽이라 날씨도 선선하고 트래킹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처음에는 언덕이 아니라 아주 완만한 경사여서 이정도라면 3km 정도는 쉽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안도감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한 300미터쯤 되는 지점에서였을까? 그때부터 완만한 길이라고는 거의 나오지 않는 급경사가 시작되었다.




혀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며 언덕을 계속 오르는 동안, 유황을 어깨에 메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저 바구니의 무게가 70~90kg에 달한다고 하는데, 저 무게를 들고 하루에 2-3회 정도 왕복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왕복을 해서 받는 금액은 하루에 1~2만원 정도.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하루에 그정도 금액을 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유황가스가 워낙 유독하고, 일 자체가 힘들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40대 정도에서 단명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작은 가방에 물병 몇개, 그리고 카메라만 메고 올라가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하루에도 여러번 왕복을 한다니,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유황을 옮기는 사람들의 몸은 다부지기 그지 없었다.



하루에 여러번 왕복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듯이, 한번에 2개의 바구니를 가지고 가서 옮겨놓은 다음에 왕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래도 칼데라호에서 올라오는 것이 가장 힘드니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사람들 사이에 룰이 있으니, 남의 것을 몰래 운반하는 사람도 없을태고.



올라가는 길에는 이렇게 표식이 있었다. 숫자는 출발 지점에서부터의 거리를 의미하는데, 14는 1400m를 왔다는 의미. 그 이야기인 즉슨 앞으로도 1,600m를 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숨가쁘게 올라가는 도중에 이 표식이 그렇게 미워보일 수가 없었다. 특히 나보다 체력이 약한 와이프, 그리고 다소 통통한 체형의 네덜란드 여자아이는 길을 걸어올라가는 것 만으로도 벅차보였다.



그렇게 2km 지점에 도착하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이 곳에서 유황의 무게를 재기도 하고, 물 한잔을 마시며 쉬어가기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곳의 휴식이란 그렇게 길지않겠지만, 자신이 가지고 온 유황의 가격이 매겨지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민감한 곳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천진난만하게 저울을 가지고 장난치는 아이. 유럽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이 아이는 알까?



유황을 깎아만든 조각품들.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어도, 이것이 유황이라는 것 때문에 꺼려진다. 유황을 가지고 가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지만, 그 냄새 때문에 다른 물건들에 모두 베어버릴까봐도 걱정이어서 가져갈 수가 없다. 어찌보면 참 잘 만들어놓은, 그리고 멋진 조각들인데.. 그래서 우리는 살 수 없음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기념품'이라며 자꾸만 유황을 내민다.



이 곳이 유황의 무게를 재는 곳. 지금도 막 한명이 무게를 재고 지나갔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곳이어서 그럴까, 이 분들은 말 그대로 순박했다. 힘든일을 하고 있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올라가면서 건네는 비스킷,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담배 한두가치 만으로도 활짝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한다. 인도네시아의 담배는 독하기 그지없는데, 한국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이라도 한 모금에 켁켁거릴 정도.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선물로 건넬 용도로 몇개 구입해 오는 것도 좋은 생각인 듯 싶다.



2km지점을 지나면 언덕이 조금 더 계속된 후에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여전히 오르락 내리락 하기는 하지만, 끝없는 오르막보다는 차라리 걷기 편하다. 덕분에 남은 1km에서는 숨을 천천히 고르면서 마지막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길 옆으로 보이는 풍경. 이 근처에서 보이는 산들은 다 기본적으로 2천미터가 넘는 산들이다. 우리가 정상으로 올라갈 때 쯤에는 날씨도 많이 좋아져서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안좋아지면 분화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좋은 날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특히, 이른 새벽이 날씨가 가장 좋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 시간에 이젠 화산을 찾는다.



유황을 어깨에 지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참 대단하다.



그렇게 1시간 반의 대장정 끝에 분화구에 도착했다. 멀리 가스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유황냄새가 조금 더 진하게 나기 시작했다. 이젠 화산이 자바섬에서 가장 많은 유황을 생산해내는 곳 중 하나니 당연히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젠 화산의 분화구 안에는 에메랄드 빛의 칼데라호가 있었다. 구름이 끼어서 아주 선명한 색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에메랄드 빛이라는 것은 충분히 구별할 수 있었다.



건너편 능선에 서 있는 사람들. 저 곳에서 사람들이 유황을 캐는 작업장으로 직접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시작된다. 그 길은 관광객을 위한 길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다니기 위해서 만들어진 길이지만.. 호기심 어린 관광객들은 그 길을 이용해서 칼데라호까지 내려가곤 한다.



유황을 이고 나르는 사람들. 길의 특성 때문에, 그리고 유황이 있는 곳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모두 고무장화를 신고 있다. 일이 고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난 때문일까. 모두 헤질대로 헤진 옷들을 입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칼데라호까지 내려가지 않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조심 아래로 내려갔다. 같이갔던 일행들 중 여자들은 모두 위에 남고, 남자 세명이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동안 작업을 하는 사람 중 하나가 우리를 가이드하면서 내려갔는데, 아마도 팁을 원하는 듯 싶었다. 이 친구들이 원하는 팁이라고는 우리 3명에 5-6천원 정도이기 때문에, 모두 묵묵히 그의 안내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 길을 왕복하는데는 약 1시간 정도 필요한데, 중턱에서부터 유황가스의 농도가 짙어지기 때문에 마스크는 필수였다.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구입한 마스크를 낄 준비를 하고는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유황가스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반대쪽으로 향하다가도, 바람의 방향이 다시 바뀌면 우리쪽으로 날라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독한 냄새만 가득해지기도 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여행자일 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하는 길을 막지 않도록 계속해서 길을 비켜줘가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가끔씩 그들에게 건네는 담배 한두가치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돈이 아닌 이상 우리가 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황가스가 계속해서 나오는 곳. 잘 보면 가스의 색도 유황이 섞여서 노란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같은 선진국이었다면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관광객이 이렇게 가까이 내려갈 수도 없을테니.. 역시 각 나라가 생각하는 수준, 그리고 안전에 대한 의식에 따라 갈 수 있는 곳들이 참 달라진다 싶었따.




일하는 사람들과 관광객이 섞여있는 풍경. 내려가는 길도 가파르고 험하기 때문에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발을 헛디디는 것은.. 음 상상도 하기 싫다. 어쨌든, 그만큼 길이 가파르고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도 조심조심 천천히 올라왔다.



유황을 나르는 사람. 재미있는 것은 어떻게 흘러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로 쓰여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 티셔츠라는게 농협이라거나 새마을운동, ~~협회 같은 내용이 적힌 것이었지만.



유황가스와 돌 위에 놓여있는 바구니.



저 아래까지 내려가면 사람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지금은 바람이 반대쪽으로 불어서 잘 보이지만, 바람 방향이 바뀌면 가스로 가득해져 숨도 쉬기 어려워진다. 다행히 내려갈때는 반대였는데, 올라올 때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후다닥 올라와야 했다. 마스크는 2개나 겹쳐꼈지만, 방진 마스크 수준이다보니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 바구니 두개를 합친 무게가 60~70kg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걸 그냥 어깨에 지고 올라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루 약 50km를 매일 왕복한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이 고된일을 참으며 할 수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독한 담배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반면에 관광객들은 이렇게 편한 모습이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도 저들과 큰 차이는 없지만.



캐낸 유황을 이렇게 쇠로 만들어놓은 장소에 하나하나 가득 담은 뒤에 올라갈 준비를 한다. 사진속에 있는 청년도 "기념품!"을 외치며 유황을 팔아보려고 하지만, 아무도 사지 않는다. 가져가지 못하니 살 수도 없는 것.



보통은 밝은 노란색의 유황들이 많은데, 아마도 나오는 과정에서 오래 머무른 녀석들은 주황빛을 띄는 진한 노란색이 되는 듯 싶었다. 유황을 들고 있는 사람은 우리를 아래까지 안내해 준 사람. 영어 한마디 못하기는 하지만, 우리같은 관광객들을 안내해주고 팁을 받는 것이 한번 이 어려운 길을 왕복하는 것보다 벌이가 나으니 사람들마다 한명씩 붙어있다. 아마도 자신들의 짐은 저기 어딘가에 올려놓은 것일 것이고..




유황가스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풍경.


사진으로 봐도 위험해 보이는 풍경인데, 실제로 저 곳에 가면 그 강도가 상상 이상이다. 저 안에서 마스크 하나 또는 손수건 하나를 두르고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이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 힘들정도다.





이젠 화산의 칼데라 호.


자바섬 동부의 칼데라 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는데, 활동하는 화산에 있는 칼데라호이다보니 그 온도도 따뜻했다. 손을 잠깐 넣었더니, 다른 친구가 이 물은 강산성이기 때문에 오래 넣고 있지 않는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후다닥 손을 빼고는 슥슥 옷에 문질러 닦고는 올라갈 준비를 했다.




이때쯤에서부터였을까.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더 이상 유황을 캐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고, 매캐한 유황가스때문에 눈이 시리고 목이 따끔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머무르려던 계획을 수정해서 빨리 분화구의 위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내려올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이런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했다. 언제 다 올라가나 싶었지만, 걸린 시간은 20~30분 정도. 이젠화산의 첫 트레일을 올라가는 것 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 빨리 올라가야 겠다는 마음이 크기도 했고.



일하는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흘린 유황 부스러기들. 그래서인지 길 전체에서 유황냄새가 가득했다. 이날 입었던 옷은 두번 넘게 빨래했는데도 불구하고 유황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유황가스와 안개가 뒤섞여서 시야는 이정도가 나왔지만, 올라가는데에는 큰 무리는 없었다.




그 두께도 튼실한 순수한 유황들. 유황은 화장품에도 쓰이고, 살균이나 기타 용도로도 많이 쓰인다고 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캐낸 유황이 어느정도의 가격에 또 팔릴지가 궁금하다. 아마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겠지. 어쨌든, 스펙타클한 풍경이라기보다는, 잊을 수 없는 풍경을 가진 이젠화산이었기에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유황 조각품들. 다 직접 손으로 만든 것들이라고 하는데, 그네들은 이 유황을 깎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화구에서 다시 시작장소로 내려오는 것은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워낙 경사가 급한 흙길을 내려오는 것이라서 조심에 조심을 해야 했다. 그렇게 분화구에서 내려오고 나니 시간은 9시 반 가량. 딱 4시간을 맞춰서 산에서 내려왔다. 남은 일정은 또 버스와 페리와 버스를 갈아타고 발리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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