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기차 지붕 위에 올라타고 떠난 악마의 코 여행


에콰도르 리오밤바의 새벽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여행자들로 분주합니다. 기차역을 가득 메운 이 사람들은 바로, 기차 지붕에 올라타고 악마의 코(Nariz del diablo)를 구경하러 가기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악마의 코 뿐만 아니라, 타고가는 도중에 에콰도르의 전원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여행이기에 에콰도르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지요.

제가 여행했을 당시에는 총 8량짜리 열차가 운행을 했지만, 지금은 안전 및 유지보수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ㅇ니해서 단 1량짜리 열차만 다닌다고 하네요. 한때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었다고 하니, 아쉽지만 운행되고 있는 1량짜리 열차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지요?


기차가 다가올 시간이 되자 점점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에콰도르는 에콰도르라는 이름답게 적도에 있는 나라이지만, 지금 출발하는 이 리오밤바라는 도시는 해발 2,750m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렇다보니 아침 바람은 쌀쌀하다못해, 두껍게 차려입지 않으면 꽤나 추울정도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가지고 있는 옷들을 가득 껴입고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멀리서 기차가 들어옵니다. 오늘의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에콰도르의 가장 유명한 '지붕 기차'지요.


맨 앞량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이 기차는 지붕에만 탈 수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화물칸처럼 생긴 기차에 탑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바글바글했던 사람들도 각자 원하는 칸을 잡아서 올라갑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과연 다 올라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던 거 같네요.


좁을수도 있는 공간이지만, 다들 옹기종기 잘 앉았습니다. 기차 위에는 푹신한 쿠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하루 종일 기차를 타야 하다보니, 옆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달리는동안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으니, 옆에 있는 여행자가 즐거운 말상대가 되어주는 거지요.


당시의 열차 여행 가격은 11달러였습니다. 에콰도르는 화폐개혁을 한 뒤로 미국 달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차표에 여행을 했던 시기가 그대로 나오네요. 2006년 7월.. 한창 혈기넘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에콰도르의 명물 지붕기차는 리오밤바역을 출발했습니다. 기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갑니다. 한기야 오후가 되면 사라지긴 하겠지만, 옷 틈사이로 자꾸만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방에서 옷을 한벌 더 꺼내 입었습니다. 3겹을 겹쳐입으니 그나마 따뜻해 졌습니다.



그렇게 기차는 달리고 달립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아니지만, 생각외로 시시각각 변하는 에콰도르 전원의 모습은 한시도 눈을 뗼 수 없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그건 기차가 출발하고 1시간 정도까지의 이야기이고, 풍경이 바뀌더라도 지루함에 빠져든 여행자는 지붕위에서 절전모드로 들어간 듯 머리를 휘두르며 졸기 시작합니다. 저 역시도 살짝 졸았다가 깨어서 바뀌어있는 풍경에 깜짝 놀라곤 했었죠.


에콰도르의 전원은 아름다웠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양이나 알파카를 치는 양치기, 사람키만큼 자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따는 사람, 드문드문 등장하는 작은 집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이 기차가 항상 지나가기 때문에 이 열차에서 바라보는 우리들에게는 신기한 풍경이지만, 열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관광객으로 가득한 기차일 뿐이지요.

하지만, 이 열차는 '그링고 기차'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콰도르 아이들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만든 관광객들의 행동 때문입니다.


기차 위에서는 이렇게 과자, 캔디 등을 파는 아저씨가 항상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는 곳이 기차 안에서 기차 지붕으로 옮겨졌을 뿐이지, 기차에서 이뤄지는 것들은 모두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이렇게 팔리는 과자나 사탕 따위는 배가 고파서 여행자들이 직접 사먹은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는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바로 이렇게 기차 주변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여행자들이 던져주는 사탕이나 초콜렛 따위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은 기차가 지나갈 시간대 쯤이면 항상 이곳에 나와서 이렇게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여행자들은 또 사탕이나 초콜렛 따위를 던져주게 되는 것이지요. 에콰도르 쪽에서도 이것을 권장하고 있지 않지만, 듣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거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여행자들이 그런 것들을 던져주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기차가 얻게 된 별명이 '그링고 기차'입니다. 여행자들의 오만함을 빗대어서 부르는 별명인 셈이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뒤로 미뤄두더라도 열차가 달리는 길의 풍경은 정말 한폭의 그림 같습니다. 넓은 평지가 나오다가도 산 속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풍경이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비슷비슷하지만, 닮은 구석은 별로 없는 그런 풍경이 이어지다보니 사진기의 셔터도 끊임없이 눌러집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11시가 될 즈음 한 마을에 도착합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느라 식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 아니면 기차안에서 파는 과자정도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사람들에게는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중요한 정거장이지요.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사람들 틈 사이로 먹을것을 파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간단하게 보더라도 중앙에 있는 사람은 뭔가 튀김요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지요? 일반적인 밀가루 반죽을 튀긴 것이지만, 고소함이 일품입니다.


그렇게 지붕위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내려와서 요기거리를 할 준비를 합니다.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가격이 비싼 편이라 대부분 구경하는 것으로 지나가지만, 아침 내내 추위에 시달린 몇몇 사람들은 두터운 점퍼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곳은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요.


제가 좋아했던 먹거리는 알이 아주 컸던 옥수수입니다. 이빨이 성긴 할아버지처럼 꽤 듬성듬성한 모습을 한 옥수수들도 있지만, 새끼손가락만한 커다란 알갱이들이 입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주 즐거운 옥수수였습니다. 옥수수와 밀가루튀김, 그리고 엠빠나다로 가볍게 식사를 합니다. 앞으로 먹을 수 있는 포인트가 최종 목적지 뿐이기 때문에 기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더 준비해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해발 3000m에 가까운 곳에서 달리는 이 기차는 달리면서 생기는 먼지도 먼지지만, 태양도 굉장히 강렬합니다. 마침 여행했던 날의 날씨가 너무나 좋았던지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강한 햇빛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달려가는 동안 보이는 풍경이 지루해진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도 여러가지 자세를 활용해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기차 지붕의 중앙을 차지해서 서로의 위에 포개져 누웠던 이 여행자들은 독일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유쾌한 분위기가 그만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친구들이지요.


그렇게 달려가던 풍경 중 옥수수밭에서 일하는 한 아주머니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기차는 알라우시를 거쳐서 악마의 코가 있는 시밤베(Sibambe)로 향합니다. 이쯤 도착하게 되면 계속해서 펼쳐졌던 아름다운 에콰도르의 전원이 사라지고, 높고 멋진 모습의 계곡과 산들이 등장합니다. 드디어, 또다른 풍경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한동안 사진찍기를 멈췄던 사람들도 다시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모두에게 새로운 풍경이기 때문이지요.


달리다보니 지붕에 사람들이 반만 올라가있는 기차가 보입니다. 아마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기차와는 별도로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기차로 보이는데, 아마 지금 운행되고 있는 1량짜리 기차가 이런 형식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계곡의 앞과 뒤 풍경. 아침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선그라스를 끼고 있거나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면에 보이는 풍경을 제대로 보고 싶기도 하고, 뜨거운 햇살이 부담스럽기도 한 것이겠지요.




이제 악마의 코를 올라갑니다.

이곳의 기차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가 지그재그 형태의 노선을 V 스위치백 형태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기차의 느낌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지요. 하지만, 이곳에 도착한 이후에 기차는 아주 힙겹게 천천히 올라갑니다. 쉽게 올라가는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듯이요.


그렇게 가다가 아까 아래로 보였던 한량짜리 기차를 만났습니다. 기차가 만나자 서로를 바라보면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물론, 저도 그들 중 하나에 동참했고 이런 사진이 남았지요.



앞에 보이는 이곳이 바로 스위치백으로 올랐던 악마의 코입니다.


아까 우리를 지나쳤던 그 기차도 보이네요.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그리고 한편에는 건물도 보입니다. 사람이 살고있지는 않는 것 같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도 건물이 있다는 것. 참 신기하더군요.


하루 종일 수고해준 기차입니다.

그렇게 새벽같이 출발한 지붕 위 기차여행은 마무리를 짓고, 종착 도시인 알라우시로 갔습니다. 이제 알라우시에서 다양한 도시로 이동하는 차를 타게 되는데, 저는 이곳에서 에콰도르 꾸엔까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이제 더욱 더 남쪽으로 내려갈 일들만 남았네요.


이 블로그의 글에는 제휴링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he links in this blog include affiliate 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