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 #32 - 준북극마을 처칠행 기차 안에서 오로라를 보다


저녁을 가볍게 더 포크스 마켓에서 먹고, 위니펙역에서 처칠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의 출발시간은 저녁 7시 20분.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주위가 컴컴했다. 같이 기차에 탔던 데이브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낮에 극심한 추위를 겪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기분이었다.


기차안에서 맞이한 아침. 동서를 횡단하는 캐나디안 열차가 북적이던것에 비하면, 데이브와 나밖에 없는 열차는 굉장히 조용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기차의 덜컹이는 소리 뿐. 그렇게 아침 내내 기차는 북쪽을 향해서 달려갔다. 달려가는 동안 날씨는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눈바람이 치다가도, 어느새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기도 한다. 블리자드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지역이다보니, 기차도 빠르게 달리지만은 못한다. 언제 어느 노선에 결빙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


지금 향하고 있는 처칠은 허드슨 베이 주식회사 때문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허드슨베이를 통해서 들어온 배들의 기착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한때 모피무역이 발달했던 그 근처의 유적지들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매니토바주는 허드슨 베이 주식회사와 인연이 깊다.


오전 나절에 북쪽으로 향하던 기차는 The Pas 역에서 잠시 멈췄다. 약 30분정도 정차할거라는 승무원의 말에 잠시 역 밖으로 나왔다. 살갗을 에이는 추위. 하지만, 위니펙보다는 따뜻한것이 영하 10도정도 되는 것 같았다.

웃기다.

추위라면 끔찍히도 싫어했던 내가 영하 10도를 가지고 따뜻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캐나다 화물철도 CN의 영향력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The Pas 역.. 물론, 이곳에서 탑승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역에서 혹시라도 누가 기차에 타지나 않을까, 이곳 저곳 두리번 거렸지만, 기차와 관련해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 빼고는 아무런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북쪽으로 향하는 시기 중에서 비수기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이 큰 기차에 사람이 이렇게 없을 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물과 기름 등을 보급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겠지. 이 열차가 사람이 이렇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관광으로서의 목적도 있지만, 처칠이라는 마을에 다양한 물자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 둘러보고 있으려니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라고 돌아오라고 한다.


여태까지 10시간 넘게 달려온 길.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시간을 달려야만 준 북극의 마을 처칠에 도착할 수 있다. 도착시간이 정해져있다고는 하지만, 적게는 2-3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에 가까운 연착을 하기도 한다고 하니 시간에 대한 걱정은 푹 놓기로 했다. 그저 기차의 식당칸에 앉아서 밀린 여행기도 쓰고, 가져온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데이브가 식사를 하러 식당칸으로 나오면 또 그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 K2의 모델이기도 한 그는, 극한에 도전하는 모험 여행자이다. 이번 여행에도 처칠에서 연썰매를 타기 위해서 가는 것이고, 올 여름에는 남극 도전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가 들려주는 모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내가 여태까지 해온 여행은 정말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벌목의 풍경이 아닐까.


언제 쌓였는지 알 수 없는 눈들이 가득한 풍경이 계쏙 이어진다. 최근에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모두 눈..눈..눈.. 눈뿐이다.


비아레일 기차표. 12일 저녁 7시 20분에 출발한 기차는 14일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한다. 실제로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반쯤이었으므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처칠에 도착할 수 있는지는 대충 감이 올 거라 믿는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여행이다.

덕분에 기차여행을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보러 갈 수 있는 방법중에서 가장 저렴한 방법 중 하나인 비아레일.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기차에서 가벼운 소일을 하는 동안에도 기차는 쉬지않고 열심히 달린다. 내일 너를 꼭 목적지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는 듯이.


그렇게 기차안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정말, 잠깐 역 밖으로 나갔다 온 것을 제외하면 한것이 아무것도 없는 하루.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졌던 이야기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와는 전혀 다른 여행자의, 그것도 재미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해가 지고나서는 급격히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셔터스피드를 높이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는 풍경들.

하지만, 그 스쳐가는 풍경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나마 남아있던 빛도 모두 사라지고, 눈 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기차의 바퀴쪽을 향하고 있는 조명 뿐이었다. 칠흙같은 어둠이 온 세상을 덮었을 즈음, 나는 기차 안에서 오로라를 볼 준비를 했다. 위니펙에서 출발하기 전에 확인한 바로는, 처칠로 향하는 두번째 날 밤에 오로라가 보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오로라 역시 빛이지만 강한 빛이 아니기 때문에 조명이 있으면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차칸에 데이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없는 곳으로 가서 커텐을 치고 모든 조명을 껐다. 이제 내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MP3 Player를 통해서 귓속으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렇게, 기차 안에서 30분 정도 음악을 들으면서 기다렸을까.

창문 너머로 녹색의 일렁거림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오로라다!"





기차 안에서 본 오로라는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 약 2시간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타난 오로라는,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담아낼 수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장노출을 주면 그대로 흔들려버리는 기차 안에서, 최대한 오로라를 담으려고 애썼다. 내일 또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이.

아마도, 그렇게 오로라를 구경하다가 잠든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나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풍경.

눈에 보이는 것은 하얀 눈과 지평선. 너무 하얀 눈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서 빨리 자리로 가서 선글라스를 가져왔다. 그래도 눈이 부신 바깥풍경은 그야말로 하얀 세상이었다.




목적지인 처칠은 준북극(Sub artic)의 마을이다. 처칠에서 약 1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툰드라 지대가 시작되는데, 처칠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나무가 많이 보이지 않는것도 이해가 갈 만 했다. 처칠정도만 오더라도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하니, 근처에 나무가 많지 않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게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으니, 아무도 밟지 않았을 것 같은 눈 위로 있는 발자국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어떤 동물인지 추측할 수 있을만한 그런 발자국들.


처칠에 가까워지자 나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전봇대들도 다시 커졌다. 엄청난 연착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겨우 2시간 정도 연착. 이정도면 매우 훌륭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40시간을 넘게 달려오면서, 그것도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달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게, 북극곰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처칠에서의 3박 4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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